Talk is cheap. Let's write
라고 자신만만하게 대문 글을 걸어놨지만, 글을 쓰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정확히는 글을 쓰는 것을 시작하는 것이 어렵다. 가장 접근하기 쉬운 주제로 첫 글을 써본다. 글을 적고 있는 지금은 2022년 12월 1일이고, 올해에는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졸업을 했는데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2022년 이야기를 하기 전 작년 얘기를 잠깐 해야겠다. 2021년 8월에 졸업한 나는 할 줄 아는 것이 많이 없었다. 약간의 기계공학 지식과 약간의 인공지능 지식이 있었을 뿐이었다. 졸업장은 있지만 정작 엔지니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무언가를 만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후배의 권유로 JUNCTION X SEOUL 이라는 해커톤에 나간 일이 있었다. 용감하게도 AI 엔지니어(!) 포지션으로 나갔는데, 막상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주어지니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AI관련해서 나의 경험은 모델을 몇 번 짜보고 개인프로젝트를 수행했던 것이 전부였다. 당시 나에게 2박 3일이라는 시간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전처리하기에도 벅찬 시간이었다. 게다가 우리 팀은 AI가 포함되지 않은 기획을 했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프론트엔드, 백엔드라는 영역이 있는 줄도 몰랐고, HTML/CSS/JS 에 대한 것도 처음 알았다. 그때 서야 실제 제품을 만들어내는 일을 해보고 싶었고, 그런 능력이 되어야 나중에 회사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기계공학은 필연적으로 제조업에 엮이니, 생산 시설을 기반으로 일을 해야하는데 컴퓨터과학은 컴퓨터 한 대와 시간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네이버 부스트캠프 챌린지
졸업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SDS알고리즘 캠프에서 알고리즘을 공부한 것, 그리고 네이버 부스트캠프 챌린지 교육을 받은 것이었다. 컴퓨터공학 전공생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그곳에서 부족한 기본기를 쌓았다. 부스트캠프에서는 매일매일 미션을 수행해야 했는데, 컴퓨터과학 전공지식을 바닐라 자바스크립트로 구현해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미션을 이해하기 위해 상당 시간을 소비해야했다. 초반 1~2주는 어떻게 버텼지만, 나중엔 문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 전공 기초 유튜브부터 공부해야 했다. 부스트캠프에서는 개발적인 체력을 많이 길렀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문제를 씨름하면서 12시간씩 집중하는 일이 무척이나 힘든 일이긴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이 나중에 지치지 않고 지속해서 집중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 것 같다. 아래 사진은 부스트 캠프 합격 직후 집으로 날아온 간식 박스인데, 개발할 때 먹으니 힘이 났다(...) 살찌는 건 덤
신촌 IT창업동아리 CEOS
부스트캠프 이후 컴공과 친구의 추천으로 IT동아리 CEOS를 알게 됐고, 그곳에서 서비스를 만들어보게 됐다. 1인 가구를 위한 인테리어 컨설팅 플랫폼 온룸을 만들게 됐는데, 프론트엔드 개발을 맡아 하면서 디자이너, 백엔드와 소통하는 과정을 익혔다. FE스터디를 하며 진행했던 미션도 참 유익했는데, 같은 페이지를 바닐라JS, 리액트(JS), 리액트(TS)로 마이그레이션 해보면서 라이브러리를 차근차근 익혔던 것 같다. 또, 이 때 만난 친구들과는 아직도 연락이 되는데 참 좋은 친구들을 알게 되어 기쁘다.
첫 번째 정규직 합격
드디어 2022년 얘기를 하게 되었다. 동아리 이후 서울기업 청년 SW인재 스카우트
라는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코딩테스트를 응시하고 여러 기업에 한꺼번에 지원해볼 수 있는 취업중개프로그램인데, 코딩테스트만 응시해놨더니 면접을 보라고 회사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한터글로벌이라는 회사였는데, 자바스프링 백엔드 엔지니어 직군 제안이 왔다. 이력서와 포트폴리오 모두 프론트엔드 위주여서 띠용했다. 면접을 보고 합격 결과를 받았지만, 연봉 협상 때 제시 받은 연봉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좋았던 점은, 나의 최소 시장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스타트업 프론트엔드 인턴, 두 번째 정규직 기회
2월. CEOS를 알게 된 친구를 통해 인턴 자리를 소개 받고, 프론트엔드 개발 인턴으로 일을 시작하게 된다. 딥블루닷이라는 팀이었는데, 이곳은 린 스타트업 그 자체였다. 같이 일하고 있는 동료들이 모두 똑똑한 사람들이었고, 일이 바쁘게 돌아갔다. 기억에 남는 점은 퇴근 시간을 기다려 본 적이 없는 회사였다는 것이다. 일을 하다보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퇴근 시간이 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일렉트론이나 크롬 익스텐션 쪽 코드를 볼 수 있었고, 시니어 개발자가 되려면 어느 정도 속도로 일을 처리해야 하는 지도 가늠할 수 있었다. 성실하게 일했던 걸 좋게 봐주셨는지, 인턴 계약 기간이 끝날 무렵 정규직을 제안받았다. 고민을 많이 했지만, 이 자리도 거절한다. 앞선 회사에서 제시받았던 연봉보다 천 만원이 높았고 업무 환경도 만족스러웠지만, 대기업이 가보고 싶은 욕망이 컸다. 또, 초봉이 더 높았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인턴 생활을 하면서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에 이미 합격한 상태였고, 끝날 무렵에는 두 가지를 병행했는데, 결국 정규직을 포기하고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 연수 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
4월 말부터,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 예비과정이 시작되었다.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산업연합회에서 주관하는 IT인재육성 프로그램으로, 3인 1조로 팀을 꾸려서 하나의 서비스를 만들도록 지원을 받는다.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 연수과정을 시작할 때 목표는 사용성이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어 보는 것
이었다. 궁극적인 목표는 실제로 돈이 벌리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
이었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적어도 충성 고객이 확보되어야 했다. IT 대기업에 취업하기 위해 많은 취준생들이 저마다의 프로젝트를 만드는데, 사실은 그 서비스들이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채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도 동아리에서 만들었던 온룸이 그러한 전철을 밟았다. 그런 실패를 거름삼아, 이번에는 플랫폼이 아니라 솔루션을 만들고자 했다. 플랫폼은 사람이 어느 정도 모여야 돌아가지만, 솔루션은 문제를 풀어내는 로직만 명확하면 한 명이 이용하더라도 가치 있는 서비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 팀은 창업을 목표로 경매정보서비스를 만들게 되었다.
본 과정이 시작한 6월부터 빠르게 달려서 2달 만에 서비스를 런칭했다. 우리 팀은 3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경매를 하나도 몰랐기 때문에 한 명이 개발을 포기하고 경매에 올인했다. 나는 눈에 보이는 것을 전부 만들었다. 앱 프론트는 Flutter + Next.js로 웹앱을 빌드해서 배포했다. Apple App Store 와 Google PlayStore에 모두 배포를 했는데, 실제로 개발자 계정을 등록하고 배포하는 과정은 처음 경험했다. 단순히 프론트엔드 개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피그마로 디자인하고, 발표자료를 시각화하는 일도 전부 했다. 프론트엔드 겸 디자이너 겸 발표자료/영상제작담당.. 보이는 건 제가 다 짰어요
앱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잠재 고객과 실사용자와도 여러 번 만났다. 법원에 직접 방문해서 경매에 참여해보기도 하고, 경매인들에게 인터뷰를 진행하며 PMF를 검증하려고 노력했다. 야구장에서 Usability Test를 진행하면서 유저가 우리의 예상 동선과 다르게 움직인 다는 것을 배우기도 했다. 그래서 성장하는 제품을 만들려면 끊임없이 유저 곁에 붙어서 유저를 관찰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니, 태그매니저 등의 세팅을 철저히 해두면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을 내리기 쉽다는 점도 배웠다.
최종 발표를 할 시점 쯤에는 지표가 쌓여서 자랑해도 괜찮은 정도가 되었다. 플레이스토어 부동산 인기 앱 37위까지 올랐다. 부동산 앱 중 경매 앱으로만 따졌을 때는 2위에 해당하는 순위였다. MAU는 2000명이 넘었고, 1일째 재접속률은 24퍼센트 정도를 기록했다.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에는 '인증 제도'라는 것이 있는데, 상위 10% 정도의 성적으로 수료한 수료생들에게 인증서를 발급하고 1달 간 미국 연수를 보내준다. 인증과는 별개로 우리 팀은 좋은 평가를 받았고, 우리 팀 전원에게 미국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는 입사 일정 문제로 인해 미국 연수를 포기하게 되었다.
두들린 방문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 과정 중 수료생 기업탐방에서는 기업용채용관리솔루션 그리팅을 만드는 두들린에 방문했다.
두들린도 린 스타트업 그 자체였다. 모두가 허슬러였고, 서로를 존중하고 믿어주는 느낌이 강했다. 따뜻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이 회사가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는지, 대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지를 들었는데 더 잘 될 것만 같은 회사였다. 대표님과 CTO님 모두 매우 젊었다. 어린 나이에도 자기 인생을 멋지게 그려나가고 있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수료생 모두에게 대표님이 명함을 건네면서 연락을 달라고 하셨는데, 아직 연락을 드리지 못했다 ... 기회가 되면 한 번 드려봐야겠다.
세 번째 취업
2022 하반기 수시 채용으로 SK 하이닉스 IT 직무에 최종 합격하게 되었다.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 연수와 취준을 병행했다. 병행하기에는 통근 시간이 부담되어 아남센터 인근의 고시원에서 살았다. 원래는 지하철을 타면서 버렸을 3시간을 매일 모아서 차근차근 준비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입사해봐야 알 것 같다. 홈페이지에 가보면 Software 개발/운영, Software Platform Engineering, Data Engineering, Master Data Governance, IT Infra 구축/기획, AMHS 구축/운영, IT 기획 등의 role이 있다. Software 개발/운영이나 플랫폼 엔지니어링 업무를 해보고 싶다. 현재 워낙 채용시장이 얼어붙어 있어서, 어디라도 된 것이 정말 다행이다. 원래 프론트엔드 위주 업무만 했는데 이번 기회에 서버/인프라 쪽 업무도 해보고 싶다. 3번의 정규직 합격을 하면서 다시 합격할 때마다 연봉이 천 만원 이상 올랐다. 일단 시작이 높은 상태라면 다음 회사에서도 유리하게 협상할 수 있을 것이다. 당분간은 회사 업무를 익히는 데 집중해야겠다.
블로그 수익
그리고 12월, 구글 애드센스로 두 번째 출금을 하게 되었다. 글을 쓰지 않은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이전 블로그는 주식 관련 글이 많아서 그런지 사람들이 종종 온다. 광고가 달려 있어 광고 수익을 열심히 모으면 1년에 100달러 정도 되는 것 같다. 글을 열심히 쓰면 더 수익이 올라갈 텐데, 하는 아쉬움과 노동 없는 소득의 달콤함을 동시에 느낀다. 이 블로그에는 광고를 달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글은 꾸준히 써야겠다.
마치며
많은 일이 있었던 2022년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힘든 날도 많았지만 웃었던 기억이 더 많이 남는다. 무엇보다 가장 많이 성장한 한 해인 것 같다.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 발표했던 슬라이드를 가지고 가족들 앞에서 시연했던 적이 있는데, 다들 '우와' 해줘서 뿌듯했다. 지치지 않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의 많은 사람이 나를 믿어줬기 때문이다. 항상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줬던 부모님, 동생, 여자친구에게 감사를 전한다. 덕분에 나도 나 자신을 믿고 노력할 수 있게 됐다.
2022년은 끝나가지만, 또다시 새로운 시작이 설렘으로 다가오고 있다. 내년에는 인생이 더 다채로워질 것이다.